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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Ⅷ>, 불 타는 강물.

by 마그마대사 2022. 4. 5.

드넓게 펼쳐져 흐르는 강물이 불에 탈 수 있을까요? 강은 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강이란 곳은 원래 불이 나는 곳이 아닙니다. 물이란 일반적으로 불에 잘 타는 물질이 아니니까요. 한데 그러한 세상의 상식에 반하여 무려 101년 동안 13회씩이나 잘도 활활 타던 강이 있었으니.. 미국 하고도 오하이오주 하고도 클래블랜드라는 도시는 1796년 쿠야호가(Cuyahoga) 강의 하구에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제철의 원료가 되는 철광석과 석탄, 석회석 등을 뱃길로 운반하기에 용이하여 각종 제조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점을 한껏 누리던 오하이오주의 수많은 제조 산업체 공장들은 상품을 생산하면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는 각종 산업/화학폐기물을 쿠야호가 강에 마음껏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환경에 대한 의식이나 규제라곤 전무하던 시절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악취는 말할 것도 없었고 수질 또한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지 않았으리라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규제가 되지 않은 무단 투기가 대도시 지역을 통과하는 거의 모든 강을 오염시켰습니다. 눈에 보이는 생명체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강. 매일같이 쏟아지는 2억 4천만 갤런에 달하는 폐기물로 인해 악취가 나는 강. 이러한 쿠야호가 강에는 두께가 5센티미터에 이르는 두터운 기름막이 강물 위에 덮여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화재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통상적으로 그나마 유명하게 알려진 쿠야호가 강의 화재는 환경에 대한 혁명을 촉발하게 된 1969년의 화재, 당시의 상황을 Time 지에서는 이렇게 전했습니다. " 1969년 6월 22일 오늘, 클리블랜드에서 지나가는 기차의 불꽃이 수면에 떠다니는 기름에 젖은 잔해에 불을 붙이면서 쿠야호가 강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온갖 생활하수와 산업/화학폐기물로 가득 찬 불타는 강의 극적인 사진을 발표했을 때, 기사에 따르면 '흐르기보다는 스며 나오는', '거품이 부글거리는 암갈색 기름덩이 강물은 흐른다기보다 꾸역꾸역 나아간다, 찌꺼기 투성이 하수가 찬 물결을 이루며 호수로 흘러들어 간다.'라고 묘사했습니다. 불타는 쿠야호가는 미국에서 날로 증가하는 환경 문제의 상징이 되었고 Clean Water Act의 통과와 연방 및 주 환경 보호기관의 설립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개혁을 촉발했습니다. 사실 쿠야호가 강에 불이 난 것은 앞서 말했다시피 무려 13회, 1868년, 1883년, 1887년, 1912년, 1922년, 1930년, 1936년, 1941년, 1948년, 1952년, 1969년.. 찾을 수 있는 기록은 이 10회 정도입니다만, 뒤늦게라도 경각심을 느낀 인간들이 환경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969년 쿠야호가 강에서 발생한 이 화재는 지역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인즉슨, 쿠야호가강의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강에 불이 난다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역 일간지에서 조차 이목을 끌지 못했다는 것, 워낙에 일상적이다 보니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그야말로 '강 위의 불구경'이 된 상황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웃기는 사실 하나가 있는데, 1969년 당시 이미 쿠야호가 강의 환경은 개선되고 나아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클리블랜드 시는 1969년의 화재가 일어나기 바로 이전 해에 하천을 깨끗하게 정화하기 위한 법안을 마침 통과시킨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정비를 시작했는데 하필 또 불이 나버려서 전 국가적으로 쿠야호가 강의 화재가 알려져 버렸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한 연유로 인하여 클리블랜드 시의 행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 중에는 쿠야호가 강이 마치 더러운 미국 하천의 대표 격이 되어버린 것에 대하여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억울했던 모양이지요. 사실 미국의 불타는 강은 쿠야호가 강뿐만이 아니었으니까요. 루지 강, 버펄로 강, 시카고 강 등에서도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왜 나만 가지고 그래."

1952년 6월 25일 클리블랜드 시내 근처 쿠야호가 강에서 예인선이 불길을 진압하고 있는 사진. 출처-Time지.


1969년, 미국 전역에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게 하였던 이 사진은 사실 1969년이 아니라 1952년 6월 25일 화재 당시의 사진입니다. 정작 사건의 주안점이 되었던 1969년의 화재는 그 화재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았던 것인지, 아니면 강불을 진화하는 것에 이골이 난 소방관들의 능숙함에 화재의 위용이 맥을 못 춘 것인지 모르겠지만 불과 30분 정도에 진화가 되어버려 누구도 사진을 찍지 못했기에 타임지에서는 그 대신 17년 전 같은 강에서 발생한 훨씬 더 큰 화재의 기록 보관 사진을 게재한 것이라죠. 1952년 당시에는 지역 일간지에 게재되어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했던 이 사진은 뒤늦었지만 덕분에 전미국을 뒤흔들었고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건 사기라고 해야 할까요, 전략이라고 해야 할까요? 워싱턴 포스트지는 말했습니다. "현실을 말하자면 1969년 쿠야호가 강의 화재는 국가 하천의 상태가 얼마나 나빠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상징이 아니라, 그들이 한때 얼마나 나빴는지에 대한 상징입니다. 1969년 화재는 미국의 첫 화재가 아니라 마지막 화재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강에 불이 나는 일은 없게 되었습니다.

1969년 여름, 닉슨 대통령은 환경품질위원회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타임지는 이를 가리켜 '다방면에서의 환경 쇠퇴에 대한 정부 조치를 조정하고 오염을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을 만들고 문제를 예측하기 위해 고안된 내각 수준의 자문그룹'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얼마 후 의회에서는 환경정책법을 통과시켰는데, 그중 하나는 환경정책위원회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위원회는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연방 활동을 검토하고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1970년이 되자 당시 닉슨 대통령은 "이 나라의 향후 10년 동안의 주요 목표는 공기, 물, 인구, 교통문제를 복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 4월 22일 '지구의 날'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마치며..

세계 곳곳에서 강물 오염은 멈추지 않습니다. 인류 문명이 탄생한 이래 역사적으로 찬란하게 번성했던 문명의 중심에는 언제나 강이 있었습니다만 강은 인간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오염되어갔습니다. 강뿐만이 아닙니다. 인류가 석유를 발견한 이래로 그 효용성을 알게 되고 그것을 개발하고 또 개발하여 발명하게 된 플라스틱을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83억 톤이 넘는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했다고 합니다. 그 83억 톤 중에 63억 톤은 폐기되었고 눈으로는 헤아릴 수 조차 없는 방대한 양의 플라스틱이 강으로 산으로 땅으로 바다로 지구 전체의 표면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스틱이 상용화된 지 고작 100년도 되지 않은 요즈음 미세 플라스틱에 관한 이슈가 무척 많습니다.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미세 플라스틱이 촘촘하게 스며들어있어 수산물을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죠. 얼마 전에는 지인과의 대화에서 전기차의 상용화로 인한 배터리 폐기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 있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당장 눈앞의 돈, 편의가 우선이고 네 앞가림부터 잘하라는 듯한 뉘앙스의 화답. 그런 환경문제에 대한 걱정은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가 할 몫이 아닌 후대의 사람들이 할 몫이라는 의견. 저는 더 이상 대화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자.' 같은 거창한 생각은 아닙니다. 어떻게 살아가더라도 크던 작던 인간은 자연을 훼손하고 오염시키며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자각하고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환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언제나 있어왔습니다만 우리는 좀 더 관심과 경각심을 갖고 앞으로를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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